부활절은 언제까지이고, 그다음은 무슨 절기인가요?

기독교인들에게 부활절은 하루가 아닙니다.

부활절 절기는 부활절 주일 전날일 토요일 일몰에 시작하여, 성령의 오심과 교회의 탄생을 축하하는 오순절이 시작하기까지 50일 간의 절기로, 유대교의 유월절부터 오순절(오십이라는 뜻)까지의 50일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유대인들은 하루의 시작을 아침이 아닌 해지는 저녁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 따라서 창세기에 나오는 하루의 시작인 저녁과 부활절을 종합해볼 때, 부활절의 시작은 토요일 저녁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절 절기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는 기간을 연장하거나 구약의 절기를 따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두루알리미 광고 박스 이미지 연합감리교뉴스에서 제공하는 주간 e-뉴스레터인 <두루알리미>를 받아보시려면, 지금 신청하세요.

초대 교회에서 사순절은 기독교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배우고, 부활절에 있을 세례를 준비하는 기간이었으며, 부활절 절기의 본래 목적은 세례를 받고 새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계속해서 신앙 안에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절 기간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교회인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의 몸이라는 사실을 기뻐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그것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줍니다. 또한 기독교 핵심 교리와 신앙의 신비에 집중하면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당하게 하신 사역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많은 교회가 부활절 기간에 성례전인 세례와 성만찬에 대해 가르치기도 하고, 교인들의 영적 은사나 소명을 분별하도록 돕기도 하며, 다가오는 오순절 예배에서 교인들을 각자의 은사에 맞는 사역 분야로 파송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성령강림절(오순절) 이후의 절기는 삼위일체주일에 시작하여, 왕국주일(Christ the King Sunday)에 끝납니다. 이 시기는 우리가 예수의 이름과 성령의 능력으로 받은 은사를 통해, 주어진 사역을 감당하고 교회의 사역을 돕는 것입니다.

각 사역의 환경이 매우 다양할 수 있기에, 이 절기의 구약과 서신서로 구성된 성서일과표(lectionary) 본문들은 더 많은 유연성을 두고 있습니다. 목회자와 예배 준비 담당자들은 세 가지 본문의 흐름(구약, 서신서, 복음서) 중 각 교회의 사역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을 택해, 연속 설교를 구상할 수 있으며, 이 세 본문은 서로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이 기사는 연합감리교뉴스의 Ask the UMC에 작성된 글입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tkim@umnews.org이메일 또는 전화 615-742-5109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읽기 원하시면,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하세요.   

선교
2025년 8월 5일,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김정석 감독이 <오하이오·한국 및 그 너머의 감리교 선교 기념대회>에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있다. 사진, 김응선(Thomas E. Kim), 연합감리교뉴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김정석 감독은 하나님께서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를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 역시 복음을 전하는 밀알로 부르심을 받았다며,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연합감리교회가 함께하는 연대를 통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헌신하자고 전했다.
교회 역사
유석종 목사가 집필한 <애국지사 이대위>. 이대위 목사는 미주 한인사회를 이끌며 대한인국민회를 ‘나라 잃은 한인들의 가정부(假政府)’로 자리매김하게 했고, 미국 정부로부터 한인들의 독립적 지위를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사진, 김응선(Thomas E. Kim)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일제 강점기 미주 독립운동을 이끈 이대위 목사 2

이대위 목사는 미주 한인사회를 이끌며 대한인국민회를 ‘나라 잃은 한인들의 가정부(假政府)’로 자리매김하게 했고, 미국 정부로부터 한인들의 독립적 지위를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독립운동과 교회 사역을 병행하며 한글 식자기를 발명하는 등 언론·교육 발전에도 기여했고,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복음과 민족을 위해 헌신했다.
교회 역사
1914년 촬영된 여러 신랑 신부의 합동 결혼식  사진. 이대위 목사는 뒷줄 중간에 있다. 사진 제공, 유석종 목사.

일제 강점기 미주 독립운동을 이끈 이대위 목사 1

이대위 목사는 “단순히 개인의 영적 구원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와 민족의 구원이라는 더 큰 목표 속에서 목회했다…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은 한 샘에서 나온다… 우리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듯 애국 열성의 피로 세례를 받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때,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금수강산의 복지를 되찾게 하실 것이라고 확신했다.”라고 유석종 목사는 기록했다.

United Methodist Communications is an agency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2025 United Methodist Communications. All Rights Reserved